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파자마? 트레이닝룩? 본문
언제부터인가 방송에서 파자마, 트레이닝룩과 같은 영어를 쓰면서 잠옷이나 운동복과 같은 우리말이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있더군요. 세계화 추세에 촌스럽게 꼭 이런 것 가지고 따지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. 언어의 자유가 분명히 존재하니 말입니다.
그러나 먼저 우리 것이 존재해야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?
아내가 집에서 편하게 입으라고 잠옷을 사왔습니다. 물론 아이들 것 까지도 함께 말이죠.
둘째 녀석이 ‘파자마 사왔네’ 그러는 겁니다. 이미 우리 다음세대는 우리말 보다 알게 모르게 영어권에 더 가까워져 있다는 것이지요.
김치찌개와 밥 보다는 햄버거나 피자와 같은 음식을 더 즐기고, 우리 영화보다 허리우드 영화를 더 좋아하는 그런 세대라는 겁니다.
앞으로 더 세대를 거치면서 우리말 우리 것들은 역사의 박물관 속에서나 보게 될까요?
변화도 좋지만 우리 것이 단단하게 기반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다른 것들이 받아 졌을 때 1+1이 되는 겁니다. 그렇지 않으면 1*1 이 되고 말겠지요.
3.1절을 맞아 우리 것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‘순국선열’을 기리며 써 봅니다.